삶은 싸움이다. 이유를 모른 채 덤벼드는 싸움이다. 피와 눈물이 끓어오르는 각축장. 그곳이 우리가 사는 세계다. 모든 삶은 집단전이기 전에 각개 전투다. 생명은 저마다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고독하게 싸운다. 사투 끝에 일시적인 평형에 도달하지만 곧바로 균형이 깨진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고되다.
고현정은 생사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싸움을 화폭에 담는다. 그럼으로써 각 싸움에 내재된 고통을 미학적으로 승화한다. 그의 그림에서는 동물과 인간, 풍광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끝없이 다툰다. 그러는가 하면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위협인 동식물들이 위태롭게 공존한다. 이 모든 테마, 이 모든 지리멸렬한 싸움이 와락 쏟아져 내리는 선들로써 생생히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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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그림들이 그저 음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학적인 요소가 군데군데 눈에 띈다. 쏟아지는 별빛 사이로 뛰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술래잡기하는 것처럼 해맑거나 바보스럽고, 쥐를 입에 문 고양이의 눈빛은 번뜩이면서도 장난기가 서려 있다. 아귀다툼하는 사람들 옆쪽에는 토끼 두 마리가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다. 이렇게 힘을 살짝 덜어낸 표현들은 긴장을 완화하고 심기를 누그러뜨린다. 고단한 삶을 조금이나마 견딜 만한 것으로 바꾼다. 고현정이 내는 이 작은 틈새와 엷은 웃음을, ‘사투의 미학’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